열세살은 변화무쌍한 나이다.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급하고 크기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한 열세살을 갓 넘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부분 이 시기에 빠른 아이라면 사춘기가 진행되어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거나 혹은 이제 막 시작하는 나이기도 하다. 생물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변화무쌍함은 수아의 경우처럼 일상에 대한 일탈의 의지로써 나타난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무쌍함이 수아의 이러한 일탈의지의 전부를 수식한다고는 할 수 없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알 수 있겠지만 수아에게는 어른들이 모르는 수아만의 비밀이 있다. 바로 지금의 엄마가 내 진짜엄마가 아닌 가수 윤설영이 내 진짜 엄마라는 진실이 만들어낸 비밀.. 그 비밀의 원천은 2년전 돌아가신 아빠가 남긴 낡은 일기장속에 생생하게 그려져있는 아빠와 윤설영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수아는 그러한 아빠의 비밀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것이다. 돌아가신 아빠와 수아의 실현될 수 없는 교감의 고리가 현실에 대한 일탈과 부적응을 만들어 내고 있는것이다. 마치 순정만화책 속의 비련의 여주인공을 수아 자신과 동일시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수아의 마음속에 지금의 엄마는 없는 것일까?. 아니.. 정반대다.. 수아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아빠란 존재는 거의 세상의 전부다. "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다. 이런 여자아이에게 아빠는 전부며 세상에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성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열세살을 넘기고 또래의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현상이지만 수아에게는 그런것이 없었다. 전혀 자연스럽지 못하다. 바로 그러한 중요한 시기에 아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아에게는 사랑할 대상이 필요했고 아빠의 죽음은 그 공백을 만들어 냈으며 애정은 정체되버렸다. 하지만 물은 계속 흘러야만 했다. 그래서 아빠가 남긴 일기장속의 진짜 엄마 윤설영을 사랑했다. 수아에게 아빠는 사랑했던 혹은 현재까지 사랑하고 있는 대상이었고 윤설영은 아빠 그 자체였을 것이다.
죽은이에 대한 사랑과 교감이 초 현실적이듯이 윤설영또한 수아에게는 초 현실적인 동시에 몽환적인 존재다. 비밀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에 갇힌 윤설영의 이미지는 수아의 환상에 종종 등장하는 것과 일치한다. 주위가 환하게 빛나며 아름다운 꽃들이 뿌려지고 윤설영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수아에게 노래를 바친다. 이러한 환상이야 말로 수아가 가장 외롭고 힘들 때 아빠와 만나는 열세살 무대의 공간인 셈이다.
이러한 아빠와의 교감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엄마에게는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고물상 아저씨의 등장이다. 엄마의 변화는 수아의 변화로 이어진다. 심적인 변화보다는 뭔가 급한마음에서 일어나는 생활의 변화.. 즉, 현실적인 아빠의 공간을 채워줄 새 아빠의 등장은 급한 마음의 일탈의지를 부축인다. "이제 엄마도 내 엄마가 아니고 아빠도 내 아빠가 아니다. 이제는 나는 외톨이다." 라는 마음의 소리가 윤설영에게 이끌었고 엄마에 대한 애증을 만들어 냈다. 나쁜 친구와 어울리다 사고를 쳐서 경찰서를 다녀오기도 했고 결국에는 가출을 하기에 까지 만들었다. 물론 이 가출의 의도는 윤설영에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히고 진짜 엄마로써 수아를 받아드리고 돌아가신 아빠를 함께 그리워 해달라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아빠의 연장선인 셈이다. 그렇게 수아는 윤설영을 찾아간다.
<아래 내용 부터는 스포일러성 글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 판단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찾아간 윤설영은 수아도 알지 못하고 수아가 내민 아빠의 사진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수아가 만들어 낸 일 없는 진실이였지만 아빠가 만들어낸 거짓이었다. 아빠는 윤설영의 이름을 도용했다. 바로 수아의 엄마에게 말이다. 이를 알지 못하는 수아는 그저 윤설영이 원망 스러울 뿐이지만 진실은 그랬다. 아빠가 돌아가신 2년동안 진실이라고 판단했던 비밀과 환상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순간이였지만 마음은 편한 수아다. 엄마가 윤설영의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에 아빠가 윤설영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을 오해한 약간은 긴 시간의 헤프닝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짜 내 엄마를 사랑할 수 있었다. 사랑했지만 사랑할 수 없었던 오해의 시간들을 지나 오해가 풀린 후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편한 수아였다. 그리고 아빠가 사랑했던 윤설영처럼 엄마가 사랑하는 고물상 아저씨를 사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아와 엄마 그리고 새 아빠가 만든 노란색 버스를 타고 기억의 창너머의 아빠를 보낼 수가 있었다.
영화 '열세살, 수아'는 아빠를 잃음으로 해서 겪어야 했던 열세살 시절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은 감독 본인이 겪었던 이야기 이기도 하다. 감독은 아버지를 잃음으로 해서 겪었던 공백감과 그 이후 찾아온 어머니에 대한 존재의 깨달음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듯 존재의 공백과 그 공백을 채우려는 인간 본연의 성장습성이 이 영화를 만들어 냈다. 또한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점 구실을 하는 열세살이라는 분계선이 만들어낸 이 성장습성의 영화는 열세살의 의미만큼이나 색다른 성장영화였다. 또한 극중 윤설영인 김윤아가 부른 이 영화의 주제곡인 '프리지아'가 의미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영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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