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캐럴의 동화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팀 버튼에 의해서 영화로 만들어진 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이 영화는 개봉 전 부터 많은 관심의 대상이 돼왔다. 아무래도 소설의 상상력과 팀 버튼의 기괴함이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봉을 하고 나서는 "팀 버튼 감독에게 실망했다."라는 평가가 더 우세해 보인다. 물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내 주변인만 하더라도 대부분은 '실망' 이라는 평을 많이 내놓고 있다. 이것은 팀 버튼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체적으로는 팀 버튼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영상 기술 측면에서는 기존의 팀 버튼 영화에서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기술적 측면에 매진하다 보니 전형적인 헐리웃의 스토리라인을 따라갔다는 비판이다. 즉,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가 원더랜드로 들어가서 결국에는 자신을 찾고 붉은 여왕에 맞서서 원더랜드를 지켜낸다는 내용은 분명 식상하고 단순하다. 그것은 어른관객들에게는 영화에 대한 비판으로 수용되겠지만,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라는 사실과 또한 자신이 아이였다는 사실을 잊은 어른들에게 던지는 영화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이건 꿈이야.. "
영화의 초반부 원더랜드에 들어온 19살의 앨리스는 이 모든 것이 "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과거 자신이 '앨리스'였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다. 이것은 원더랜드에 들어 오기 전 과거 자신이 경험한 이상한 나라가 '꿈'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과 그것이 결국 자신의 경험을 부정함으로써 과거의 기억을 망각해 버렸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영화 초반후 애벌레 압솔롬이 앨리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앨리스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라는 말에서 처럼 앨리스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잊어버린 채, 성인의 문턱에 서버렸다. 그런데 우습게도 앨리스가 원더랜드에서 겪는 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나 역시도 경험했다. 20대 중반을 지나오면서, 획일화된 교육과 성공에 대한 욕망, 이기적인 가치관은 과거 내가 소유했었던 아이의 마음을 잃게 만들었다.
그것은 오직 나만이 경험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어릴때 봤던 동화였지만, 앨리스의 결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 세월이 지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잊게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앨리스의 망각과 나의 망각이 현실에 순응한 결과라면 아마도 매우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이러한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관객들의 마음에 던지는 아이들 영화다.
영화 초반 앨리스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집안을 대신해 어느 귀족집안과 약혼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토끼를 보게되고 결국 원더랜드로 들어간다. 나는 왜? 이 시점에서 앨리스가 원더랜드로 들어갔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앨리스는 어린시절 탐험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던 아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의 그 꿈이 희석되가는 것을 느꼈고, 현실의 벽때문에 급기야는 하기 싫은 결혼까지 해야하는 상황에 몰려버린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위와 같은 상황을 많이 접했다. "당신은 어렸을 때 꿈을 이뤘나요?" 한국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이 질문에 자신있게 "예" 라고 말한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각박한 현실에 자신의 꿈과는 무관한 '공무원'에 몰리고 대기업을 갈망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어린시절을 떠나보내왔다. 팀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는 이러한 어른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왔나? 그것은 마치 내가 앨리스의 결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많은 것들을 실용한 지식으로 채우며 불필요한 것들을 잊으며 살아왔다. 이러한 반복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것들을 잃게 만들었고, 획일화된 삶을 살도록 강제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 앨리스는 과거 원더랜드의 경험을 "꿈"이라고 부정하며, 억눌러왔던 6가지의 불가능한 것들을 읊조리며 자신을 찾아간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찾게된다. 그것은 연약한 소녀의 힘으로 거대한 괴물을 물리치듯 현실에 의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이상을 현실로 바꿔놓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결국엔 앨리스는 원더랜드에서 빠져나와 현실세계에 들어가자 마자 약혼을 취소하고 탐험가라는 어린시절의 꿈을 현실로 만든다. 그러한 '기적'은 결코 우리의 '운'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그것은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처럼 우리 안에 내재한 것들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에 대한 본질을 잊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꿈은 결코 '기적'이 아닐거라고 본다.
P.S : 기괴한 앨리스를 보고 싶다면 테리 길리엄 감독의 '타이드 랜드'를 보세요. 난해한 영화지만, 앨리스와 비슷한 분위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아주 개인화된 블로그(http://blog.naver.com/final0ne)" 에도 같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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