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여인은 현장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나오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각자 돌을 쥐고 있다가, 여인에게 돌을 던져 죽이는 형벌이다. 과거와 현재,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우리 손에는 돌 대신 키보드 자판과 마우스가 쥐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30대 여교사' 는 공공의 적이 됐다. 언론이고, 네티즌이고 예외 없이 '30대 여교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물론 교사의 잘못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 사회의 통념상 스승과 제자 사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적 관계는 근친상간처럼 금기시 하고 있다. 하지만 금기라는 경계를 넘어 생각하면 여교사가 비난 받을 근거나 이유는 없다. 이미 여교사는 처벌의 부적격 사유가 있어서 무혐의 처리를 받았다. 그럼에도 여교사에게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모독과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대중의 분노와 처벌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마녀사냥의 사례를 보게 되면, 처벌이 무거운 중죄보다, 처벌은 약하지만,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집중된다. 최근 발생한 4억 명품녀 사건을 보면, "지금 내 몸에 걸친것만 4억..." 발언이나 직업도 없이 부모 용돈으로 명품을 사는 행위를 통해 정서적 반감이 발생했다. 감정에 따라 4억 명품녀를 처벌을 갈망하지만, 마땅한 처벌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고안해낸 전략이 '신상털기'에 의한 인격 살해였다. 여기에 언론과 정치도 역할을 했다. 언론의 경우, 4억 명품녀의 반 정서적인 발언을 발췌해 퍼날랐고, '마녀 사냥' 의 이면보다는 자체에 집중하며 이슈를 확대재생산했다. 또한 정치권은 4억 명품녀의 탈세 조사를 세무청 국정감사장에서 요구하는 등 인기영합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 사이 4억 명품녀의 기본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30대 여교사 사건은 개인적으로 타블로 사건이나 4억 명품녀 사건보다 피해가 훨씬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제자와의 관계라는 금기와 여교사에 대한 남성주의적 관음이 더해져, 어떤 것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30대 여교사의 얼굴과 직장, 가족, 주소, 연락처까지 알아냈지만, 여교사와 제자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말한 대로 정말 사랑했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교사와 제자와의 부적절한 관계, 불륜 등에만 집중해, 결국 한 여성과 한 남성의 인생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너희 중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장 7절에 적힌 글귀로, 간음한 여인에게 사람들이 돌을 던지려 하자, 예수가 나와 사람들에게 했던 말씀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듣고, 돌을 내려놨다. 우리를 떳떳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 아니다. 우리 안에 '괴물'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30대 여교사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는가?" 법은 죽을 죄라고 하지 않았지만, 규율 권력에 의해 금지된 것들을 내면화한 우리는 여교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저주와 증오의 시선은 인간으로써 살아갈 권리를 박탈했다. 이것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다. '광기'다. 옛날 옛적에는 예수가 나서서 광기를 막았지만, 오늘의 이 광기는 누가 막는가? 우리 스스로 내면화된 규율로 인해 집단적인 광기에 휩싸여 있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봐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교사에게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냉철하게 반성해야 해봐야 한다.
Camille Clau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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