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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

집단사고에 빠진 타진요.


지난 1일 방영된 MBC스페셜 "타블로 스탠포드에 가다" 편

 최근 타블로(본명 이선웅)에 제기된 학력 위조 파문으로 인해 여론이 시끄럽다.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 1일 MBC 스페셜 "타블로, 스탠포드에 가다" 편이 방영된 직후 더욱 극렬해지고 있다. 

 스탠포드 수석 졸업생이라고 알려진 타블로는 고학력 연예인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중 한 명이다. 그만큼 타블로와 스탠포드는 뗄레야 뗄 수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타블로에게 있어서 스탠포드 졸업 유무는 자신의 정체성 유무와 직결되며, 동시에 가수로서의 거취가 결정될 중요한 문제이다. 

 진실이 무엇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사회 정의'와 관련된 것일수록 진실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에 해당하는 문제다. 진실의 '사회 정의' 속에는 '과정'도 포함된다. 결과의 합리성을 도출해내기 위해 수단의 도덕성을 무시하는 것은 진실의 궁극인 사회정의를 실현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일명, 타진요)' 카페에 들어가면 비교적 예의바른 카페명과는 다르게 매우 거친 글이 많다. 그러한 거침은 타블로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에게 까지 뻗어있다. 특히 'whatbecomes (카페 관리자)'와 스텝들이 올리는 글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글에 대한 내용이 없고 욕설이 섞여있음에도 무조건적인 동의의 경향이 나타난다. 욕설 행위는 감정적 행위로 이성적 행위와는 구별된다. 따라서 비이성적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 동의는 비이성적 행위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비판이 없는 것은 카페 내의 비판적 여론을 필터링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나치 정권는 게슈타포(비밀경찰)를 동원해 반대세력들을 제거했다. 이 때문에 독재 사회에 대한 내적 비판이 사라졌고, 독일은 극단적인 집단사고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알고있다시피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으로 이어졌다. 현재 '타진요' 는 이러한 집단사고에 빠진 상태라고 보인다. 내적 비판이 없음으로 스스로 얻어낸 정보의 검증을 받을 수 없다, 즉 정보의 반증가능성이 높아짐으로써 정보의 객관성이 떨어지게된다. 이렇게 생겨난 정보는 헛점이 많아서 추가로 제시된 반박 자료에 쉽게 지위를 잃는다. MBC 방송이 나간 직후 카페 내 다수의 자료의 지위가 하락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사고에 빠진 집단은 오류를 만들어낼 위험이 매우 높다. 특히 목표가 분명한 정부, 기업, 시민단체 등에서 이러한 위험이 많이 난다. 집단사고의 사례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미국의 피그스만 공격, 컬럼비아호 폭발 사건처럼 비판이 결여된 비판사고는 사회적으로 큰 재난을 야기해왔다. 우리나라도 97년 외환위기가 집단사고에 의한 재앙에 해당된다. 이러한 위험에 예방하고자 일부 기업에서는 '역전담역(devil's advocate)'을 두어 정책에 대해서 비판하도록 한다. 또한 비판에 대해서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도록 구성원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타진요'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우리 사회에 던지고자 하는 메세지는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단은 적절치 못하다. 카페 관리자들의 독단적 필터링으로 카페 내의 비판적 의견이 전무하다. 그로인해 자료의 반증가능성이 높아 증거로서의 지위가 불안정하다. 이것은 '타진요' 에게는 아킬레스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비판적 목소리를 수용하여, 자기 쇄신을 해야 한다. 그러한 전제 없이 타진요의 모든 의혹 제기는 '갇힌 주장'일 뿐이다. 또한 아무리 공인일지라도 한 개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과 과도한 인권침해는 수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아래는 제니스 (Irving L. Janis) 가 제시하고 있는 '집단사고를 예방하는 10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