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인권문제와 청년문제에 관심이 많아 읽게 된 책이면서도, 제목에서 풍겨지는 관심과 따뜻함에 이끌려 보게된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덕성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토론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인권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과거, 자유와 낭만, 청춘의 상징이었던 대학생이 왜 오늘날 절망과 자조, 비극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학생들이 직접 써낸 글과 토론내용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책을 처음 펴는 순간부터, 쉽게 읽히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회과학도서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외국학자의 이름이나 이론이 포함된 것도 아님에도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은, 책의 솔직함과 대담함에 있다. 이제 곧 학생 신분을 벗어나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불편하지만 반드시 알아야하는 불편한 진실들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저자는 2010년 3월 우리사회의 이슈였던, <김예슬 선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김예슬 선언이 386세대에게는 폭발적이고 뜨거 운 관심과 지지를 받은 반면, 정작 청년들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김예슬 선언>의 깊은 울림은 길들여진 경주마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트랙을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고려대’ 라는 타이틀과 ‘글쓰기 실력’ 이라는 스펙뿐이었다. 이 요소들을 제외하고, 청년들이 <김예슬 선언>에 보낸 피드백은 냉소와 조롱뿐이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과거 운동권이었던 386세대들이 청년들에게 자행했던 착취와 더불어 자식들에게 경주마로서의 삶을 강요한 것에 대한 반성과 문제의식이 표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오늘날 청년들에게는 386세대들을 뭉치게 했던 역사적 과정에서의 혁명이 결핍돼있고, 살인적인 경쟁으로 인한, 개인주의가 만연해있어 자신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토론할 만한 사회적인 분위기와 의식이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청년들이 <김예슬 선언>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지지를 보낼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긍정함으로써 자신을 부정해야하는 과정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대학생으로써 대학의 문제점을 모를 리가 만무하다. 그럼에도 김예슬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김예슬 선언>을 긍정함으로써 그 안에서 담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인정하게 되면, 결국 자신이 마주한 현실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예슬처럼 고려대생에 대담함까지 겸비했다면, 충분히 인지조화를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김예슬같은 대담함을 갖추고 있지 않다. 또한 대담함을 갖췄지만, 고려대라는 타이틀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대중과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청년들은 김예슬을 불편해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녀가 너무 일찍 책을 출간한 것조차,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불편한 진실은 <김예슬 선언>이 담고 있다기보다는 여전히 안주하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청춘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다. 그 말뜻을 해석하자면, 청춘의 가치는 인생을 즐기는 데 있다. 빛줄기 하나 없는 네모난 단칸방에서 네모난 책만을 보고 있다면,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청년들이 청춘을 부정하는 것은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평생을 경주마로서의 강요된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라는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삶을 산다해도 그것은 청춘이다. 60대도 누리는 청춘의 즐거움을 왜 20∼30대가 즐기지 못한단 말인가. 안정만을 추구하지 말고, 가끔은 모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