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에서는 여성운동을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하했으나 사실은 여성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표현을 쓴 이유는 지금의 여성운동이 지극히 엘리트적인 동시에 한국사회의 성별 대립구도를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강화시키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보수적인 언론들의 보도프레임과 허위나 날조된 정보들이 인터넷상에서 범람하면서 왜곡된 측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성운동의 운영과 활동에 문제점이 있다.
여성운동의 근본적 취지는 여성들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인권이 매우 취약하다. 이것은 이번 경기침체에서도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경기침체로 노동시장에서 급속도로 구조조정이 이뤄졌거나 이뤄지고 있는데, 일순위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의 비중이 남성노동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듯이 여성들의 이러한 현실은 여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형편없음을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인권문제가 발생하는 주된이유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가족에서의 주도권은 누가 경제력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남성주의적 사고 방식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취업률이 높다고 해서 여성의 권익이 향상됐다고도 볼 수 없다. 노동현장에서의 지위, 임금, 근무환경, 복지등 남성들과의 갭이 크다면 그것역시 여성운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수의 여성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권익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그 역사가 짧아서 일 수도 있지만 앞서 주장한되로 여성운동의 운영과 활동에서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여성운동은 지극히 엘리트적 이다. 여성활동가들의 면면을 보면 엘리트들이다. 골드미스나 알파걸 담론에서 연상할 수 있듯 현재의 여성운동은 그 범주를 주류형태로 잡고 있다. 즉, 엘리트여성들의 영역에서 주로 운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의 영역에는 활동이 지극히 미미하거나 아니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여성활동가들이 철저히 엘리트적인 습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활동가들이 엘리트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책을 검토하고 만들어 내는 것은 엘리트들이 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는 것은 자신들이 엘리트라고 하여 엘리트적인 습성까지 활동영역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즉 이것은 여성들에 대한 보편적 권익신장에 의한 공익집단이 아니라 활동가 자신의 이해와 결부시킨 사익집단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예로 보육정책을 보자. 보육정책은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독려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따라서 지금의 어린이집이라든가 24시간 탁아소등을 운영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제도적인 미비점이 많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제 모퉁이만 돌면 어린이집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바로 보육교사들이다. 보육교사들의 평균임금은 최저임금(올 해 인상 91만)에서 얼마차이 나지 않은 수준이다. 보험료등을 공제하면 이마저도 못 받을 수도 있다. 높은 노동의 강도와 낮은 임금과 처우, 그리고 사회적 인식까지 더해져서 보육교사들은 노동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들은 보육시설을 확충하라, 교사들을 확충하라고만 주장한다. 즉 양적인 팽창만을 주장하고, 실질적인 보육교사들의 처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계가 여성들의 권익실현을 위해 주장하는 보육제도가 오히려 여성들의 권익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여성운동의 엘리트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두 번째는 여성운동이 오히려 남여의 대결구도를 강화하고있는 측면 이다. 이건 예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멀리서도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 학교에는 여성학 수업이 있다. 그런데 여성학 수업에는 여학생들만 들을 수 있도록 돼있다. 남학생들은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물론 이것은 다른 학교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다. 그럼 다른 예를 보자. 내가 알고 있는 여성 언론사들의 기자나 임원은 대부분 여자다. 남자는 거의 없거나 한, 두명 있을 뿐이다. 이것도 일반화가 될 수 있다. 그럼 경험적으로 들어가보자. 여성운동은 여자들만 한다. 여성활동가들 중에는 남성은 별로 없다. 가끔 권해효씨 같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활동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여성이 여성활동을 주도한다. 이 관계에서 남성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자는 여자를 모른다.' 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함축적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지만 크게 현실과 다르지 않은 걸로 봐서는 뭔가 다른면이 있기는 한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점이 있다. 여성운동의 궁극은 여성을 남성과 평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걸위해서는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이해과정이 결여돼있어 남성이 생물학적으로 우세한다거나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식의 왜곡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주의 사회를 배척해나가기 위해서는 남성을 여성운동속에 포함시켜야 한다. 아니 오히려 여성학 수업을 들어야 하는 대상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소통의 문제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조리퐁', '소나타3'등의 유언비어들이 인터넷상에서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즉, 여성운동의 이러한 폐쇄성이 남여의 대립구도를 오히려 강화해 사회갈등만을 조장하고 결과적으로 여성운동을 왜곡시켜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운동이 보완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운동의 딜레마 가 있다. 여성운동을 보게되면 그 주 수혜자인 여성들이 대체적으로 동조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일종의 계급배반인데, 이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크다. 한국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성격이 심하다. 물론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가부장적구조는 크게 약화됐지만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것은 가부장적 혹은 남성주의적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데올로기 생산기구인 언론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여성의 이미지는 대체로 남성의 능력과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이를 이상적으로 바라본다. 여기에는 여성운동의 엘리트성에 여성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포함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참여부족은 분명한 여성운동의 장애요소다. 여성운동의 주체인 여성이 참여하지 않는 다는 것은 여성운동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성 개개인들의 인식에 문제점이 더 크다. 이러한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남성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는 정당성과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이 글에서는 내가 평소 여성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았다. 따라서 개인적인 평가다. 하지만 보편적인 문제인식도 이와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비록 여성운동의 대상과는 다른 남성의 입장에서 쓴글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여성운동의 문제점을 살필 수 있다. 물론 대체적으로 여성운동의 문제점이나 여성들의 인식문제를 다뤘지만, 남성들의 왜곡된 시선도 문제다. 여성을 동반자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남성들의 시선이 여성들로 하여금 피지배적 성향을 갖게한 것이다. 이것이 앞서 말한 남성주의적 이데올로기다. 또한 여성운동이 지향해야 하는 점도 여성사회의 건설이 아니라 양성평등사회 실현이라는 점도 명심하고 이를 통해 남성사회를 이해시켜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P.S 블로그 글치고는 굉장히 긴편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교사를 다그치면 공교육이 살까? (0) | 2009.04.26 |
---|---|
영화 마케팅의 선정성, 언제까지 지속할까?. (0) | 2009.04.24 |
반값등록금 실현이 정말 가능한것인가? (2) | 2009.04.23 |
황정음-김용준 우결 출연 사생활의 공식화? (0) | 2009.04.22 |
남한과 북한, 그리고 PSI참여의 현실적 한계 (0) | 2009.04.21 |